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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질병의 역사! 콜레라

by 희황 2020. 4. 15.

콜 이라는 극심한 솔 써 복통 그리고 부터 증세를 동반하여 심한경우

탈수로 인해 감염자가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매우 위험한 질병 이었읍니다

콜레라 로 추정되는 질병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이미 기원전 6세기경

인도의 갠지스 강 인근에서 발견됩니다

주로 오염된 식수를 통해서 전염되는 이 질병은 그러나 이후 2000여

년간 주로 이 지역에서만 발병하는 일종의 풍토 병으로 남아있다가 19세기

무렵 전세계를 뒤흔들 전염병으로 확산 됩니다

이는 19세기 초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소 통치하고 있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통치를 위해서 영국군이 파동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국 군인

들이 병에 감염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식민통치 과정에서 인도인들이

강제로 이주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풍토 경으로 남아있던 콜레라가

점점 퍼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콜레라가 아직 유럽으로 확산되기 전인 1817년 이미 인도 내에서

는 대규모 콜레라가 발생하기 도 했습니다

그런데 콜레라가 유럽의 도달하기 직전 유럽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19세기

중반에 유럽은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에 들어선 상태였습니다 영국을 시작으로

볶고 3 철도가 깔리기 시작하고 이전에 비해 개선된 생활 환경으로 인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산업화로 인해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좁은 지역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사는 사람들이 들어 나던

상황은 전염병의 확산을 용이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극도로 밀집된 생활을 하던 이들의 대부분이 면역력이 약화된 도시

피곤 층 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죠 게다가 당시 유럽에서는 쓰레기 처리

시설은 물론 아직 상하수도 차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오염된

식수를 통해서 전염되는 콜레라가 확산되기 아주 쉬운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중반 들어서 폭발적으로 깔리기 시작한 철 또는

사람과 울 번만 완성한 것이 아니라 질병도 같이 옮겼습니다

그런데 영국군 으로 인해 확산되기 시작한 콜레라 는 정작 영국을 통해

서유럽으로 확산되지 는 않았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콜레라에 짧은 잠복기 로 인한 것이었는데요 콜레라 는

다른 전 연풍 들과는 달리 잠복기가 짧으면 몇 시간 길어도 4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만약 인도에서 콜레라에 감염된 영국인이 배를 타고

영국으로 향한다고 하더라도 대해 안에서 이미 증세를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완치가 되거나 사망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초기 콜레라 는 곧바로 인도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것이 아니라 인도

인근에 육상 교역로를 따라서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이란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 지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인도 내에서 대규모 콜레라가 발병한 지 4년이 지난 1821 년 현재

5만 의 수도인 무스카트 에서 역시 대규모 콜레라가 발병 했는데 이 역시

인도에서 이곳으로 넘어간 영국군에 의해 퍼졌을 것이라는 추론이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비교적 천천히 진행되던 콜레라의 확산이 급작스럽게 유럽지역 으로

대규모로 진행된 것은 이 시기 유럽에서 일어난 어떤 정치적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요 바로 1830년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지역에서

러시아의 집에 대한 방귀로 일어난 11월 봉기 얻습니다

자신에 대한 팔라 4 직면하여 러시아 일자리 어떤 니콜라이 1세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치여 국경에 배치되어 있던 병력을 동유럽으로 재배치 하는데

이때 콜레라에 걸려 있던 러시아 군에 의해서 대규모 전파가 시작된

것입니다

콜레라 는 1831년 빠르게 모스크바와 폴란드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머지않아 영국과 서 유럽 지역에서도 집단적인 감염이 일어 많습니다

1832년에 는 미국에서도 대규모 감염이 일어나 쪽 특히 플랜트 지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던 오늘날의 독일 지역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프로이센 한국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다양한 조치들을 취해 있는데요

국경을 건너 넘어올 수 있는 것 중 12곳 만을 남기고 나머지 지역은

봉쇄 했고 콜레라 발명 지역에서 넘어올 이들을 20일간 경리 시켰으며

해당 지역에서 온 편지들 까지 소독해 쓰나 병의 확산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831 년 베를린 의 인구 23만 명 중 2천

200여명이 콜레라의 감염 되었고 이 중에서 다시 1417 명의 콜레라로

인해 사망 했다고 전해집니다

비슷하게 함부르크에서 1,600 명 빈에서 2천 200명 정도가

사망했는데 유럽 대부분의 도시에서 전체 인구의 0.5 에서 1% 가 콜레

나에 의해 희생되어 쪼

게다가 1830년대 줘 1번 대규모로 발생한 콜레라 는 이후 20세기

초까지 다섯 차례 넘게 대규모로 제발 했읍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규모로 콜레라가 접하 되자 사회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시민들은 당국이 콜레라의 확산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고 불만을 터뜨렸고

프로이센의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이 몰려 있는 시민들을 해서 나려 하자

시민들이 역으로 경찰서로 쳐 들어가기 모를 파괴 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832년 부터 콜레라가 퍼져 나가는 데요

2일차 시기에만 반 8000여 명이 희생되는 상황에서 귀족을 비롯한

부유층이 개인 의사와 약사를 데리고 아직 병이 퍼지지 않은 지역으로

떠나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 하기도 했죠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콜레라가 오염된 식수를 통해서 전염 된다는 사실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 의사와 약사를 데리고 떠난다고 해도

질병으로 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이는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희생 는 이를 중에 정치인이나 귀족을 비롯한

상류층의 희생자 역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에서도 확인됩니다

예를 들어 당시 프랑스의 총리였던 카즈미 를 페리 애는 총리로 재직중에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고 미국의 11대 대통령인 제임스 독스 포크 역시

이후 콜레라에 걸려 사망합니다 철학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 해 길 역시 콜레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는데요

궁금했던 무명 시절을 벗어나 1831년 에는 베를린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던 해결은 이제 경제적 여유가 생겨 다른 상일 중대가 마찬가지로

베를린 을 벗어나 별장에 피신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자신과 가족만을

24시간 돌보는 개인 주치의 까지 있었죠 하지만 독일에서 학기가 시작하는

10월말에 맞춰 수업을 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려 베를린으로 돌아왔고 이는

치명적인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베를린에서 곳 콜레라에 걸린 헤겔은 11월 11일까지 도 강의를 하다가

14일에 운명을 달리합니다

이로부터 이틀 뒤에는 되어 크기 쌓인 업으로 쓰 후 얻자 증대 폴리 틱

난다 환 밑엔 즉 전쟁은 정치의 연장 산이 있다

단지 다른 수단으로 하는 것일 뿐 이라는 말로 지금까지도 잘 알려진

프로이센의 잠근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역시 콜레라로 사망합니다

그러니까 콘에 라는 경제력을 통해 전염병의 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상류층에

바람과는 달리 신분과 개업을 가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중

명치 않던 콜레라의 발병원인은 영국의 촌 스노우 라는 의사에 의해서

드디어 규명 됩니다

1854년 또다시 대규모로 콜레라가 퍼지던 상황에서 좀 쓴 없는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데요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이 인근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폭발적으로 콜레라 발병

자가 늘어가는데 이들이 모두 하나의 통 프를 통해서 식수를 공급받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반면 바로 인근의 한 건물에는 무려 오백 명이 넘는 빈민들이 뭘 살았는데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콜레라에 걸리지 않았죠

john's 노는 곳 이 건물의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이용하는 오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폰 물 대신 직접 만든 맥주를 물 대신 마셨던 인근에

양조장 직원들 역시 콜레라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더

조사를 한 존슨 오는 최초의 오염되어 떤 펌프 물 의 한 여성이 아기

기저귀를 빨리 1부를 버릇에 타는 것 그리고 그 아이가 콜레라에 걸려

사망한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내고 곧바로 정부의 요청해서 해당 펌프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알렸습니다

2

로서 콜레라가 오염된 식수를 통해서 전파 된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밝혔죠

결국 촌 스 너의 의해서 경험적으로 콜레라의 8 병원이 밝혀지자 각국

정부들은 앞다투어 쏘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는 특히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콜레라의 발명으로 인해 당신 인심이

흉해 졌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 토마스 디퍼 다인은 양 20대 콜러 가지고 스파

it's 질 콜레라에 대한 불안감은 거대한 채 치과 같았다 라는 말을

남겼는데요 불안감에 채찍을 맞으면 90 한국은 서둘러서 5 날을 준비하고

식수와 하수를 엄격히 불렸으며 오래된 하수처리장의 오염 물질이 땅 밑으로

쓰면 뜨는 것을 막기 위해 주기적으로 청소를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역설적이게도 콜레라로 인해 도시의 생활 환경이 급속도로 개선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콜레라의 발병원인 많이 밝혀진 것이지 치료법은 개발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단 한번 콜레라가 발병하면 대규모의 희생자가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이미 존 스노우 에 의해서 콜레라의 발병 원인이 밝혀진 지 40년

가까이 흐른 1892년 함부르크에서 대규모 콜레라가 재발해 8천 6백여

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함부르크 의회가 새로운 정화 장치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 문제를

둘러싸고 몇 년째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한편 항생제가 개발된 후 한국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콜레라 는 이제

거의 잊혀진 질병이 되었지만 4 전이나 자연 재해로 인해 열악한 환경에

처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콜레라가 발명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예민해서 약 70만 명의 콜레라에 걸렸고 2010년 큰

지진이 일어났던 it 에서도 콜레라가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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